이름은 버터지만 텁텁한데 고소하고, 또 자꾸 생각나는 묘한 매력을 가진 버터가 있습니다. 다이어트와 건강에 대한 관심 때문에 다양한 제품들이 쏟아지지만, 여전히 대중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이 브랜드가 아닐까 싶은데요, 오늘은 대공황 속에서 태어나 90년 넘게 사랑받아온 땅콩버터 브랜드, 스키피(SKIPPY) 이야기입니다.
1. 브랜드의 시작
1) 땅콩버터의 유래
사실 땅콩버터 자체로만 본다면 역사는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고고학적 기록에 따르면 잉카와 아즈텍 문명부터 땅콩을 갈아서 만든 페이스트를 섭취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땅콩버터의 초기 형태라는 것이 중론입니다.
근대에 이르러 1884년 캐나다의 화학자 마르셀루스 길모어 에드슨(Marcellus Gilmore Edson)이 땅콩 페이스트에 대한 특허를 냈고, 1895년에는 시리얼로 유명한 켈로그의 창립자 존 하비 켈로그(John Harvey Kellogg)가 땅콩버터 제조법에 대한 특허를 내면서 본격적으로 넛버터(Nut Butter)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1904년 세인트루이스 세계 박람회에서 땅콩버터가 처음 소개되면서 피넛버터의 대중화가 시작됩니다.
2) 스키피의 탄생
1900년대 초반, 당시 미국은 대공황의 여파로 가정에서 영양가 높고 저렴한 식품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던 시기였습니다.
이때 화학자였던 조셉 루이스 로즈필드(Joseph Louis Rosefield)는 우연한 기회에 수소를 활용해 기존 땅콩버터의 문제점이었던 기름이 분리되는 현상을 해결할 방법을 발견합니다.
조셉은 이 균질화 공정(homogenization process)에 대해 특허를 받고 다른 땅콩버터 제작회사에 라이선스를 받는 형식으로 사업을 시작했고, 1933년 자신만의 브랜드를 론칭하면서 기존 제품들보다 더 크리미하고 안정화된 스키피(Skippy)를 출시합니다.
3) S K I P P Y
스키피(Skippy)라는 이름은 당시 미국에서 인기 있던 만화 캐릭터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해당 캐릭터는 1920년대에 퍼시 크로스비(Percy Crosby)가 창작한 장난기 넘치는 소년으로, 미국 아이들의 큰 사랑을 받은 만화 속 주인공이었습니다.
조셉은 이 캐릭터가 지닌 밝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브랜드에 적용하고 싶었고, 그대로 브랜드 이름이 사용합니다. 예상 대로 대공황으로 사회 전반이 어려움에 처했던 시기에 희망적이고 친근한 이름은 소비자들에게 긍정적인 정서를 전달하는 데 효과적으로 작용했습니다.
하지만, 원작자 크로스비는 만화 캐릭터 스키피(Skippy)에 대해 상표권을 등록하고 있었고, 조셉과 크로스비의 법적 분쟁이 시작됩니다.
1934년부터 시작된 법정 공방은 이어지던 중에 1945년 크로스비가 등록한 상표권이 만료된 사이, 1947년 조셉은 땅콩버터로 상표를 등록합니다.
이후 크로스비는 개인적인 불운으로 소송에 관여하지 못했고, 20년이 지나 1964년 크로스비 사후에 그의 딸 조안 크로스비 티베츠(Joan Crosby Tibbetts)가 상표권에 대한 소송을 이어갔지만, 결과적으로 땅콩버터 회사의 승리로 마무리됩니다.
이후 땅콩버터 스키피는 브랜드로서의 정체성을 굳히게 되었고, 캐릭터와는 별개의 길을 걷게 됩니다.
여담이지만 크로스비의 딸 조안은 1990년대 스키피닷컴(skippy.com)의 도메인을 먼저 등록해 아버지의 작품을 알리는데 활용했고, 지금도 스키피 땅콩버터의 공식 홈페이지 도메인은 스키피가 아니라 피넛버터닷컴(peanutbutter.com)입니다.
4) 로고 디자인
초기 로고는 특별히 로고라기보다는 만화 스키피의 한 장면을 모티프로 페인트로 낙서한듯한 워드마크였습니다. 이후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지금까지 이어지는 상징적인 현대적인 워드마크(Wordmark)가 등장했고, 미국 국기를 연상시키는 패키지에 파란색과 빨간색을 활용해 소비자들에게 친숙한 이미지를 전달합니다.
1980년대에는 로고에 약간의 현대화가 이루어졌지만 기본적인 디자인 요소는 유지됩니다. 이후 현재 정착한 서체의 둥근 모서리와 역동적인 형태를 통해 전반적으로 생동감 있고 위트 있는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2. 브랜드의 성장
스키피가 출시된 1930년대 미국은 대공황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열량이 높고 맛도 있는데 상대적으로 저렴한 땅콩버터는 자연스럽게 많은 가정에서 필수품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여기에 더해 1935년에는 세계 최초로 알갱이가 살아있는 크런치(Chunky) 스타일 땅콩버터를 출시하면서 스키피만의 맛과 식감으로 사랑받는 브랜드가 됩니다.
1940년대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단백질이 풍부한 식품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군대 배급품으로도 사용되어 브랜드 인지도가 크게 상승하게 됩니다. 이후 베이비붐 세대의 등장과 함께 가정에서의 땅콩버터 소비량이 증가하면서 스키피는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 갑니다.
1960년대에는 "스키피를 먹고 자란 어린이들(Skippy Kids)"이라는 광고 캠페인을 통해 가족 친화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면서 시장에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고 미국 가정의 필수 식품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3. 브랜드 방향성과 성장 전략
스키피는 품질의 일관성과 지속적인 제품 혁신, 그리고 세대를 이어 정서를 자극하는 마케팅을 활용해 90년 넘게 미국 가정의 식탁 문화를 형성하는 중요한 브랜드로 성장합니다.
1) 품질과 일관성
스키피의 가장 큰 강점은 변함없는 품질과 맛이라고 말하는데요, 세대를 넘어 같은 맛과 질감을 유지하고, 언제 먹어도 기억에 있는 그 맛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제품이 동일한 표준을 충족하도록 보장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더불어 1933년 창립자인 조셉 (Joseph Louis Rosefield)이 개발한 특허 공정은 현대 기술과 결합해 조금씩 개선되면서 스키피만의 경쟁력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2) 스키피 키즈(Skippy generations)
스키피는 가족, 추억, 그리고 미국적 가치를 중심으로 마케팅을 전개합니다. 특히 1960년대에 진행한 스키피를 먹고 자란 어린이들(Skippy Kids)이라는 광고 캠페인을 통해 가족 친화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기 시작합니다.
어린 시절 행복했던 가족과의 식사시간, 학교에서 먹던 도시락 시간, 캠핑에서 먹던 샌드위치 등 즐거웠던 시간과 제품의 정서적 유대를 강화해 브랜드에 추억의 이미지를 투영하는 전략을 활용합니다.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의 향수를 자극하고 친근함을 강화하면서 일상에 함께해 온 가족 같은 브랜드의 이미지를 구축합니다.
4. 브랜드의 확장
1) 시장의 변화를 반영한 포트폴리오 확장
스키피는 초기 단일 제품에서 출발해 시장 변화와 소비자 요구를 민감하게 감지하며 제품 라인을 확장해 왔습니다.
1980년대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저지방(Reduced Fat) 버전을 출시했고, 크런치(Crunchy), 슈퍼 청크(Super Chunk), 크리미(Creamy)등 전통적인 제품부터 피넛버터 바이트(P.B BITES)나 크래커 같은 스낵과 천연(Natural), 무염(No Salt Added), 유기농(Organic), 프로틴(Protein)등 건강 지향적 제품도 출시합니다.
특히, 익숙한 맛, 익숙한 브랜드의 이미지를 보전해 전통적인 맛을 유지하면서도 건강 지향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균형을 찾아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게 됩니다.
2) 글로컬라이제이션을 통한 세계 진출
스키피는 미국 시장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1980년대부터 본격적인 글로벌 확장을 시작합니다. 캐나다와 멕시코를 시작으로 유럽, 아시아, 호주 등으로 시장을 확대하고 국가별로 현지 입맛에 맞춘 제품 전략을 구사합니다.
아시아 시장에서는 단맛을 조금 더 강화한 제품을 선보이고, 유럽에서는 유기농 성분을 강조한 제품을 주력으로 내세워 땅콩버터가 익숙하지 않은 소비자들의 입맛을 공략합니다.
5. 브랜드의 현재
2024년 기준 스키피는 전 세계 60개국 5,000개 이상의 대형 유통점과 온라인 채널을 통해 판매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미국 외 지역에서의 매출이 전체의 약 30%를 차지할 정도로 땅콩버터를 세계에 알리고 있는 글로벌 브랜드입니다.
스키피는 1955년 베스트푸드(Bestfoods)가 인수하고, 2000년에는 유니레버(Unilever)에 인수됩니다. 그리고 유니레버가 2013년에 호멜 푸드(Hormel Foods)에 약 7억 달러에 매각하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현재 브랜드를 보유한 호멜 푸드(Hormel Foods)는 스키피 외에도 대표적인 브랜드로 스팸(SPAM)을 보유하고 있고, 국내에서는 생소한 브랜드이지만 해외에서 잘 알려진 플랜터스(Planters), 호멜(Hormel), 제니-오(Jennie-O) 등 유명 식품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기업입니다.
호멜푸드는 나스닥(NASDAQ)에 상장된 기업으로 티커는 HRL 입니다. 참고로 2023년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스키피 브랜드는 회사 전체 매출의 약 10%를 차지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2023년 기준으로 세계 땅콩버터 시장에서 약 18.2%의 점유율을 차지하며, 지프(Jif)와 함께 글로벌 시장을 양분하고 있습니다.
미국 시장에서는 지프가 약 40%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고 스키피는 약 25% 정도의 점유율로 2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최근 자료를 보면 지속가능성에 중점을 둔 새로운 브랜드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는데요, 2022년부터 시작된 "지속 가능한 땅콩 프로젝트(Sustainable Peanut Project)"를 통해 환경 친화적인 농법으로 재배된 땅콩만을 사용하겠다는 목표를 발표하고 건강을 생각하는 트렌드에 대응하고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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