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인슐린 생산으로 시작해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브랜드가 된 헬스케어 기업이 있습니다. 오늘은 덴마크 GDP의 4%를 책임지는 기업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 브랜드의 시작
1923년 덴마크에서 설립된 노보 노디스크의 역사는 실제로는 두 개의 경쟁 회사에서 시작됩니다.
◼ 노디스크 인슐린 연구소
1922년 노벨상 수상자 아우구스트 크로그(August Krogh) 교수는 북유럽 지역에서 인슐린 생산 허가를 받은 후, 1923년 당뇨병 전문의 한스 크리스티안 하게돈(Hans Christian Hagedorn), 약사 아우구스트 콩스테드(August Kongsted)와 함께 노디스크 인슐린 연구소(Nordisk Insulinlaboratorium)를 설립했습니다.
◼ 노보 테라포이티스크 라보라토리움
그로부터 2년 후인 1925년, 노디스크의 직원이었던 토발 페데르센(Thorvald Pedersen)이 창립자 하게돈과 갈등을 빚어 1924년 해고되자, 형인 하랄 페데르센(Harald Pedersen)과 함께 회사를 떠나게 됩니다.
형제는 결국 1925년 자신들만의 회사인 노보 테라포이티스크 라보라토리움(Novo Terapeutisk Laboratorium)을 설립하고 두 회사는 러닝메이트가 되어 무려 64년간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됩니다.
한쪽이 새로운 인슐린 제형을 개발하면 다른 쪽도 더 나은 제품으로 응답했고, 이런 경쟁은 당뇨병 치료 기술 발전에 큰 동력이 됩니다.
그렇게 특성도 기업 문화도 달랐지만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오던 두 기업은 결국 1989년 합병하면서 지금의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 A/S)가 탄생하게 됩니다.
◼ Novo + Nordisk
'Novo'는 라틴어로 '새로운'을, 'Nordisk'는 북유럽을 뜻하는 'Nordic'에서 파생된 단어로, 종합해 보면 '새로운 북유럽'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더불어 북유럽에서 시작된 혁신적인 의료 기술로 세계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실 합병 전 두 회사는 워낙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경쟁구도가 만들어지면서 합병이 이루어지기까지 험난한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노디스크는 더 학술적이고 연구 중심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고, 좀 더 늦게 설립된 노보는 더 실용적이고 상업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서로 다른 기업 특성은 합병 이후에 각자 쌓아온 기업 문화와 방향성이 서로 시너지를 주면서 균형 잡힌 성장 전략의 토대가 됩니다.
◼ 치유와 재생의 상징 아피스 황소
노보 노디스크의 로고에 등장하는 황소는 아피스 황소(Apis bull)로, 고대 이집트에서 아피스 황소는 치유와 재생의 상징으로 의학과 건강을 관장하는 신성한 존재로 숭배받았습니다.
노보 노디스크는 이 황소를 모티프로 사용해 질병과 맞서 싸우는 의지와 만성질환에 대항하는 힘을 지닌 제약기업으로서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2. 브랜드의 성장
초기 노보와 노디스크는 인슐린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였습니다. 1920년대 당시 인슐린은 생명을 구하는 혁신적인 치료제였지만, 품질과 순도에서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설립 초기 두 회사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각 다른 접근 방식을 택했습니다.
노디스크는 더 순수하고 안정적인 인슐린 개발에 집중했고, 노보는 사용하기 편리한 인슐린 제형 개발에 주력했습니다. 마치 분업을 하듯 공통의 목표를 향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두 시장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고, 세계 시장에서도 빠르게 성장하게 됩니다.
1) NPH 인슐린(중간형 인슐린)과 휴먼 인슐린 개발
1940년대에 이르러 노디스크 인슐린 연구소는 NPH 인슐린(중간형 인슐린)을 개발합니다. 이 중간형 인슐린은 당뇨병 환자들이 하루에 한두 번만 주사하면 되는 혁신을 이뤄내면서 기술력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됩니다.
1980년대에는 기존의 동물 유래 인슐린과 달리 유전공학 기술을 이용해 알레르기 반응이 적고 안전한 "휴먼 인슐린"을 개발하고, 이 혁신을 계기로 두 회사는 본격적으로 더 큰 도약을 위해 합병하게 됩니다.
2) 노보펜과 위고비
합병 후 노보 노디스크는 전 세계 당뇨병 환자를 위한 종합 솔루션 브랜드로 도약하게 됩니다.
1980년대부터는 펜타입의 인슐린 주사 개발에 집중해 환자들이 더 쉽고 정확하게 인슐린을 투여할 수 있도록 기여했고, 그렇게 출시된 노보펜(NovoPen) 시리즈는 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면서 브랜드 인지도를 크게 높이는 계기가 됩니다.
2000년대 들어서는 혈당을 낮추는 것을 넘어 체중 감량 효과까지 제공하는 GLP-1 수용체 작용제 개발에 집중하면서 리라글루타이드(liraglutide)를 주 성분으로 하는 삭센다(Saxenda)와 세마글루타이드(semaglutide) 성분의 치료제인 위고비(Wegovy)가 탄생하게 됩니다.
3. 브랜드 방향성과 성장 전략
노보 노디스크는 "변화를 주도하여 당뇨병과 기타 심각한 만성 질환을 퇴치한다"는 명확한 전략과 철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 환자 중심의 혁신 지향 철학
노보 노디스크의 가장 큰 차별점은 '평범하지 않은 접근으로 변화를 이끈다(Unordinary drives change)'는 철학을 바탕으로 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노보펜(NovoPen)입니다. 1980년대까지 당뇨병 환자들은 주사기로 인슐린을 투여해야 했기 때문에 정확한 용량 조절이 어렵고 외부에서 사용하기 부담스러운 문제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노보펜은 정확한 용량을 어디서나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당뇨병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게 됩니다.
2) 장기적 연구개발 투자 전략
노보 노디스크는 장기적 관점의 연구개발 투자를 지속했습니다. 매출의 약 13-15%를 꾸준히 R&D에 투자해 위험도가 높지만 혁신적인 기술 개발에 과감한 도전을 지속합니다.
대표적으로 GLP-1 수용체 작용제 개발은 거의 20년간 상용화되지 못했지만, 연구를 지속해 결국 비크토자(Victoza), 오젬픽(Ozempic), 위고비(Wegovy) 등 혁신적인 제품들을 출시합니다. 결과적으로 이 제품들은 현재 노보 노디스크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포트폴리오가 되었습니다.
3) 글로벌 시장 확장과 현지화 전략
노보 노디스크는 현재 전 세계 168개국에 판매되고, 80개 사무소에서 77,000명 이상의 직원이 근무하며 각 지역의 의료 환경과 규제에 맞춘 현지화 전략을 구사합니다.
개발도상국에서는 저렴한 인슐린 공급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선진국에서는 최신 기술이 적용된 프리미엄 제품을 출시하는 방식으로 차별화된 운영 전략을 사용합니다.
나아가 각 국가의 보건당국과 긴밀히 협력하여 새로운 치료 가이드라인 개발에 참여하고, 의료진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단순한 제품 공급을 넘어선 종합적인 헬스케어 브랜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4. 브랜드의 확장
1930년대부터는 해외 시장으로 진출을 본격화합니다. 초기에는 유럽 내 인근 국가들을 중심으로 확장했고, 2차 대전 이후에는 북미와 아시아 시장으로 진출했습니다.
1950년대에는 미국 FDA 승인을 받아 북미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했고, 1960년대에는 일본과 아시아 시장을 시작으로 1980년대부터는 중국과 인도 같은 신흥 시장에도 적극 투자하기 시작합니다.
2024년 기준으로 북미 시장이 전체 매출의 약 50%를 차지하며, 유럽이 25%,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이 15%, 기타 지역이 1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5. 브랜드의 현재
노보 노디스크는 인슐린 한 가지 제품으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당뇨병, 비만, 혈우병 등 다양한 만성 질환 치료제를 생산하는 종합 바이오제약회사로 자리 잡았습니다.
주요 생산 시설은 덴마크, 미국, 중국, 브라질, 프랑스 등에 위치해 있는데요, 특히 덴마크 본사의 칼룬보르그(Kalundborg) 시설은 세계 최대 규모의 인슐린 생산 공장으로, 전 세계 인슐린 수요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 주식 시장에서의 위치
노보 노디스크는 덴마크 코펜하겐 증권거래소와 뉴욕 증권거래소에 동시 상장된 상태로, 노보 노디스크 재단(Novo Nordisk Foundation)이 회사 주식의 약 28%를 보유하며 의결권의 77%를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단기 수익보다는 장기적 성장과 사회적 가치 창출을 우선시하는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형성하려는 전략입니다.
한동안 비만 치료제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면서 위고비 덕분에 2024년 10월 기준으로 시가총액 측면에서 세계에서 3위 안에 드는 큰 제약회사였지만 현재는 경쟁 심화로 5위로 하락한 상태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전 세계 당뇨병 치료제 시장에서 약 3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GLP-1 시장에서는 55.1%의 시장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도전 과제도 만만치 않습니다. 일라이 릴리(Eli Lilly)와의 치열한 경쟁, 제네릭 의약품의 위협, 각국 정부의 약가 인하 압력 등이 주요 리스크 요인입니다. 여기에 더해 GLP-1 제제의 공급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생산 능력 확충도 시급한 과제입니다.
특히 최근 경쟁사인 일라이릴리에서 더 저렴한 가격에 마운자로(Mounjaro)를 출시하면서 경쟁은 더 치열해질 전망입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위고비도 공급가격을 용량에 따라 10%에서 최대 40%까지 인하하겠다고 밝힌 상태입니다.
위고비 vs 마운자로 핵심 비교 • 하루하루 좋은 날
위고비 vs 마운자로 핵심을 비교하고 마운자로의 차별점에 대해 알아봅니다.
shihoday.com
경쟁 심화라는 도전 속에서도 로고의 아피스 황소가 상징하는 강인한 의지처럼 지속적인 혁신을 통해 전 세계 수억 명의 당뇨병과 비만 환자들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하는 브랜드로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흥미로운 이야기
- 101년의 역사동안 CEO는 6명에 불과 - 노보 노디스크는 101년 역사(1923년 창립 기준) 동안 오직 다섯 명의 CEO만을 배출했다. 2025년 8월부터 새로 취임한 여섯 번째 CEO 마지아르 마이크 더스트다르(Maziar Mike Doustdar) 역시 사내 출신으로 오랜 기간 근무해 온 내부 승진자다.
- 국가 경제 규모를 넘어선 기업 - 한때 노보 노디스크의 시가총액이 덴마크 전체 경제 규모를 넘어서며, 핀란드의 노키아와 유사한 '국가적 리스크' 우려가 제기되었다.
- 64년간의 ‘혈전’ 끝에 합병에 성공한 기업 - 노보와 노디스크는 1920년대부터 치열한 경쟁을 벌였고, 경쟁 관계 속에 각각 병원을 설립하기도 했으며, 1989년 극적으로 합병했다.
- 세계 최대의 인슐린 펜 생산 - 노보 노디스크는 연간 6억 개 이상의 인슐린 펜을 생산하며, 전 세계 인슐린 펜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 ‘스튜어드십 소유’ 방식의 기업 구조 - 노보 노디스크는 steward-ownership(이익보다 미션 중심의 경영)이라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경영모델로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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