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격은 품질에 비례한다는 논리에 반기를 든 브랜드가 있습니다. 오늘은 스웨덴의 시골마을에서 시작해 전 세계 가구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꾼 브랜드 이케아(IKEA)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 브랜드의 시작: 스웨덴 시골 청년의 꿈
스웨덴의 작은 마을 엘름훌트(Älmhult), 10살 때부터 자전거로 마을을 돌며 생선과 연필을 팔던 소년이 있었습니다.
소년의 이름은 잉바르 캄프라드(Ingvar Kamprad)로 형편이 어려워서 물건을 팔았다기보다는, 상점을 운영하시던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사업적 감각을 익힌 진취적인 소년이었습니다.
소소한 판매로 사업의 맛을 알아가던 잉바르는 1943년,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기로 다짐하고 학업까지 중단하며 이케아(IKEA)를 설립합니다.
아버지에게 투자받은 적은 돈으로 시작한 회사는 이렇다 할 매장도 없었지만, 고객에게 가치를 전달한다는 비전으로 우편 주문을 통해 물건을 판매하기 시작합니다.
잉바르의 사업은 크리스마스트리 장식품이나 시계, 볼펜처럼 작은 생활용품을 판매하며 단계별로 사업 요령을 배웠고, 나중에는 가구 사업에 집중하면서 지금의 이케아로 성장하게 됩니다.
(1) I K E A : Ingvar Kamprad Elmtaryd Agunnaryd
이케아(IKEA)라는 이름은 창립자 잉바르 캄프라드(Ingvar Kamprad)의 이름과 성에서 "I"와 "K"를, 그가 자란 농장의 이름인 엘름타리드(Elmtaryd)에서 "E"를, 그리고 그가 태어난 스웨덴 남부의 작은 마을 이름 아군나리드(Agunnaryd)에서 "A"를 따와 조합한 이름입니다.
일단 단순하고 발음도 쉬워서 기억하기 좋은 이름인데요, 더불어 스웨덴이라는 브랜드의 지역적 뿌리까지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영미권에서는 영어식 발음인 "아이키아"라고 발음하기도 하지만, 스웨덴 발음으로는 "이케아"에 가깝습니다. 한국 공식 홈페이지에서의 한글 표기도 "이케아"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이케아는 제품의 이름들도 재미있습니다. 책장에는 남성의 이름(Billy), 패브릭 제품에는 여성의 이름(Sanela), 소파나 테이블에는 스웨덴의 지명(Holmsund) 등이 사용되는데요, 이런 작명법은 난독증으로 제품 코드를 읽는데 어려움을 겪던 잉바르가 특정 장소나 이름을 활용하던 습관이 문화로 자리 잡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2) 로고 디자인

1951년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브랜드의 로고는 변화가 많았습니다. 레드, 브라운, 블랙 등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으로 여러 차례 리뉴얼을 거쳤고, 현재는 스웨덴 국기에서 영감을 받은 파란색과 노란색을 사용해 브랜드의 뿌리와 정체성을 표현하는 디자인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2. 브랜드의 성장 배경
사업 초기 잉바르는 스웨덴 전역을 돌며 공급업체나 제조사와 친분을 쌓았고, 발품을 팔며 회사에서 판매할 상품들을 확보합니다.
몇 년간 꾸준히 각 지역의 비즈니스 파트너들과 교류하던 어느 날, 잉바르는 전국적으로 저렴한 가구에 대한 수요가 높다는 사실에 주목해 가구 산업의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당시 스웨덴은 전쟁 이후라 가구에 대한 수요는 많아졌지만, 정작 소비자가 방문할 수 있는 매장은 형편없는 가구를 취급하는 낙후된 매장 이거나, 부유층을 위한 아주 고가의 제품만 판매하는 매장으로 양분화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시장의 현황을 목격한 잉바르는 누구나 합리적인 가격으로 우수한 품질의 가구를 소비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본격적으로 가구 사업에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소득이나 사회적 지위에 관계없이 모두를 위한 가구를 만들겠다는 잉바르의 신념은 민주적인 디자인의 가구를 탄생시켰고, 1950년부터 "카탈로그"로 제작돼 배포되면서 가구 쇼핑의 새로운 문화를 제시합니다.
*참고로 1958년 엘름훌트(Älmhult)에 오픈한 스웨덴 최초의 이케아 매장 자리는 2016년 이케아 뮤지엄(IKEA MUSEUM)이 들어섰고, 인근 부지에 사무실과 이케아 호텔(IKEA Hotel), 문화센터(Inter IKEA Culture Center), 레스토랑(Restaurant)등이 추가되어 브랜드의 역사와 문화를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는 복합 문화 예술 단지(IKEA Village)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1) 조립식 가구의 시작, 플랫팩(Flatpack) 시스템
1950년대 초반, 우연히 테이블 다리를 분리해서 납작하게 포장하는 장면을 목격한 잉바르는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고객이 직접 조립해서 완성되는 "플랫팩(flatpack)"시스템을 도입합니다.
1953년부터 도입된 이 시스템은 운송에서 늘 문제였던 파손율을 낮추고, 운송비를 획기적으로 줄이면서 소비자에게 더 저렴한 가격으로 제품을 제공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며 이케아의 성장 동력이 됩니다.
(2) 정통 가구 업계의 견제와 보이콧(Boycott)
이케아가 성장을 거듭할수록 자신들의 수익을 우려한 스웨덴 가구 협회는 이케아의 파격적인 가격 정책에 반발해 보이콧을 진행합니다.
가구 협회는 이케아에 납품하는 공급업체를 위협하고, 이케아를 바람직하지 않은 회사라며 대중의 접근을 차단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잉바르는 민주주의적 가구에 대한 신념을 지키며 대체 공급망을 찾아 나섰고, 결국 폴란드의 가구 제조업체들과 협력하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더 낮은 생산 비용과 혁신적인 디자인을 출시하게 됩니다.
이케아는 이때의 사건으로 단기적으로 위기를 맞이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더 효율적인 공급망을 구축하면서 글로벌 가구 시장에서 입지를 확보한 반면, 보이콧을 주도한 정통 가구 업체들은 결국 경쟁력을 잃고 시장 점유율을 내어주며 마무리됩니다.
3. 브랜드 방향성과 성장 전략
이케아의 철학은 단순하고 강력합니다. "많은 사람들을 위한 더 나은 일상을 만들자!"
식상한 슬로건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 개념은 지금의 이케아를 만들어준 가구 사업의 출발점부터 모든 제품 개발과 운영의 기준이 되어온 브랜드의 핵심 개념입니다.
(1) 실용적이고 민주적인 디자인 철학
이케아 전반에 깔려있는 "많은 사람들을 위한 더 나은 일상 만들기"라는 모토는 보편성의 원리를 전제로 합니다.
이케아는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논리로 가격과 품질의 균형을 찾기 위해 노력했는데요, 이렇게 보편성에 따라 균형을 맞춰 생산한 결과물을 두고 내부적으로는 "민주적인 디자인"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케아가 말하는 보편적인 원칙은 가격(Price), 품질(Quality), 형태(Form), 기능(Function),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까지 총 5개의 영역에서 반영되며, 각 요소가 보편타당한 기준에서 균형을 이루게 되면 비로소 민주적인 디자인이 탄생하게 됩니다.
디자인만 보면 스타일리시하지만, 이케아 가구의 본질은 기본적으로 문화적 차이를 초월한 미니멀리즘을 추구하고, 실제 생활에 유용해야 한다는 기능성과 합리성의 원칙을 바탕으로 설계됩니다.
이 부분은 꼭 필요한 것만 남기고 덜어내는 #무인양품의 디자인 철학과도 닮아있습니다.
무인양품(MUJI) - 상표 없는, 좋은 품질의 상품
상표가 없는 [無印], 좋은 품질의 상품[良品]을 뜻하는 이름을 내걸고 "이름보다 상품의 본질"에 집중해온 브랜드가 있습니다.오늘은 그 철학 만으로도 하나의 명백한 브랜드가 된 브랜드, 세계
teo-story.com
좀 더 깊게 생각해 보면 이케아를 관통하는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철학은 보편타당한 논리와 합리적인 이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의 실용주의적 사상과도 연결됩니다.
"보편타당한 법칙에 따라 행동하라"는 칸트의 말처럼, 잉바르는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관점에서 시장을 보며 사업적 아이디어를 구상했고, 이 아이디어는 8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브랜드 전체를 지배하는 핵심 철학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2) 미로형 쇼룸
이케아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특징 중 하나는 체험형 쇼룸인데요, 이케아의 매장은 전통적인 가구 매장과 달리 미로처럼 구성된 쇼룸의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은 의도적으로 잘 구성된 복잡한 동선으로 체류 시간을 늘리고 구매를 촉진하는 효과를 노린 전략으로, "그루엔 효과(Gruen Transfer)" 또는 "쇼핑몰 효과"라고 하는 소비자 행동 이론에 기초한 전략입니다.
이케아의 쇼룸은 소비자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쇼핑 경험과 소비 패턴을 설계하고, 나아가 브랜드의 정체성을 만드는 요소로도 작용하게 됩니다.
(3) 인테리어 테마파크
평균 30,000㎡ 규모의 이케아 매장은 고객이 실제 생활공간처럼 꾸며진 다양한 룸 셋을 경험하며 자연스럽게 구매욕구를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는데요, 이런 전략은 소비자가 직접 제품을 경험하고 조립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제품에 대한 애착과 가치가 증가하는 심리적 현상인 "이케아 효과(IKEA effect)"를 탄생시킵니다.
더불어 "배부른 고객은 행복하다"는 철학에서 출발한 레스토랑부터, 어린이를 위한 무료 놀이공간인 스몰란드(Småland), 그리고 어른들을 위한 디지털 경험 공간까지 다양한 체험형 공간을 통해 단순한 상업 공간을 넘어 사회적 공간 환경을 조성합니다.
이런 전략은 이케아의 매장을 단순한 쇼핑을 넘어 먹고, 보고, 놀면서 즐거움을 경험하는 공간의 이미지를 부여했고, 꼭 구매를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방문을 유도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참고로 1985년 처음 등장한 이케아의 미트볼은 잉바르가 셰프와 함께 개발한 레시피로 만든 정통 스웨덴식 미트볼로, 1994년부터 전 세계 매장에서 제공되기 시작해 지금은 연간 약 10억 개씩 판매되고 있습니다.
(4) 옴니채널(Omnichannel) 전략 구축
이케아는 2000년대 후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소비자들의 온라인 쇼핑 선호가 증가하면서 유통채널 확대에 투자하기 시작합니다.
이후 오프라인 매장과 온라인 채널을 통합하고, 두 채널 간 이질감을 줄이면서 원활한 쇼핑 경험을 제공하는 데 중점을 두고 유통 트렌드의 변화에 대비했습니다.
특히 "Click & Collect 서비스"(온라인으로 주문하고 매장에서 픽업하는 서비스)를 도입해 고객 편의성을 높이고, 오프라인 매장의 물류 기능을 활용해 배송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전략으로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한국도 이케아 코리아(IKEA Korea) 출범 이후 2018년부터 이케아 온라인 몰(IKEA online)을 운영하기 시작했고, 무게에 따라 일정 배송비를 지불하면 배송해 주는 배송 서비스(IKEA delivery service)를 운영 중입니다.
4. 브랜드의 확장
이케아는 스웨덴에서 사업이 안정을 찾자 시장을 확대하기 시작합니다. 1963년 노르웨이 오슬로 지점을 시작으로 1985년에는 북미 시장에 진출했고, 현재는 전 세계 60개국에 460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특히, 2006년 중국 시장 진출을 통해 아시아권 시장 점유율을 크게 높였고, 한국에서의 정식 매장은 2014년 광명점을 시작으로 고양, 기흥, 동부산에 추가로 오픈했고, 종종 백화점이나 대형 쇼핑몰에서 팝업 매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제품 라인도 지속적으로 확장되면서 초기의 단순한 가구 판매에서 가구 및 홈 퍼니싱, 스마트 홈 솔루션, 식품(IKEA Food), 지속가능한 에너지 사업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영역을 확장합니다.
5. 브랜드의 현재
모두를 위한 합리적인 가구를 꿈꾸던 청년의 바람은 80년의 시간 시간을 통해 전 세계 가구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꾸며 현실이 되었습니다.
성장 과정에서 경쟁 업체의 견제와, 환경문제, 안전 문제, 지적 재산권 문제 등 다양한 잡음도 있었지만, 과제에 직면할 때마다 이케아는 신념을 지키며 극복했고, 글로벌 선두를 달리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1982년 세금과 운영상의 이슈로 본사를 스웨덴에서 네덜란드로 이전하면서 현재 본사는 네덜란드 델프트에 위치해 있습니다. 2024년 기준 매출은 약 450억 유로로 가구시장 내에서 글로벌 기준 약 6%, 유럽 기준 약 15%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주요 운영은 네덜란드에 등록된 비영리 재단인 INGKA 재단(Stichting INGKA Foundation)을 지주회사로 둔 INGKA 그룹(INGKA Group)이 담당하고, 브랜드와 콘셉트, 프랜차이즈 시스템에 대한 소유권은 인터 이케아 시스템(Inter IKEA Systems B.V)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기업의 형태는 비공개 기업으로, 재단 중심의 분권화된 소유 구조를 통해 단기적인 주주 이익보다 장기적인 가치 창출에 집중하고, 적대적 인수를 방지해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기 위한 창립자의 의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2018년 창립자인 잉바르(Ingvar Kamprad)의 사망 이후, 세 아들 마티아스(Mathias Kamprad), 피터(Peter Kamprad), 요나스(Jonas Kamprad)가 이사회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지만, 직접적으로 경영에 관여하진 않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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